구로소개

신도림동

  1. 구로소개
  2. 구로구역사
  3. 동별역사
  4. 신도림동

연혁 및 동명의 유래

신도림동은 조선시대말 까지는 경기도시흥군 상북면(上北面)의 도야미리(道也味里) · 원지목리(遠芝牧里) 등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경기도 내 각면의 명칭과 구역을 다시정함에 따라, 이 지역은 경기도 시흥군 북면 도림리(道林里)가 되었다.이어 1936년 4월 1일에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의해 경기도 시흥군의영등포읍과 북면 · 동면 지역의 일부가 경성부에 편입될 때 도림리 중상도천(上道川) 우안(右岸) 지역만 경성부에 편입되어 도림정(道林町)이되고 상도천 좌안(左岸) 지역은 이에서 제외되어 경기도 시흥군 동면도림리로 편제되었다. 광복 후 1949년 8월 13일에 대통령령 제159호에따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이 확장될 때 이 도림리는 영등포구에편입되었는데 1936년에 먼저 편입된 도림리가 있는 까닭에 신도림리라하였다.


그러나 동리명은 옛날 그대로 "리(里)"로 칭해오다가 1950년3월 15일서울특별시조례 제10호 「서울특별시 동리 명칭 중 개정의건」이 공포되어 모두 "동(洞)"으로 고쳐져 신도림동이 되었다. 1975년10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979호로 동명칭 및 구역을 확정하고, 동981호에 의해 동장 정원 및 명칭과 관할 구역을 변경하였는데, 이 때신도림동은 신도림1동과 2동으로 분동되었다. 그리고 1977년 9월 1일서울특별시조례 제1181호에 의하여 인구 3만명 이상의 동을 분동함에다라 신도림 2동은 대림1동과 2동으로동명이 바뀌면서 분동되었다. 대림동(大林洞)이란 명칭은 신대방동(新大方洞)의 대(大)자와신도림동(新道林洞)의 림(林)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따라서신도림1동은 원래의 이름대로 신도림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후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에 의해 영등포구로부터 구로구가분리 신설됨에 따라 구로구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그러므로조선시대의 도림리(道林里)는 구로구의 신도림동과 영등포구의 도림동,대림동으로 3분되어 그중 신도림동만이 구로구에 속하게 되었고 나머지지역은 영등포구에 속하게 된 것이다.


신도림동이란 동명은 도림동에서 새로 갈라져 나왔으므로 불리어진이름이다. 도림동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가 전해 오고 있다.하나는 이 마을 일대의 들판이 억새풀 종류의 새나무가 많았으며, 특히길옆에 삿자리 종류의 풀이 숲을 이룬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라는것이다. 또 하나는 산의 형국이 마을 뒤로 산처럼 둘러 싸고 있어 이마을이 국도에서 돌아앉아 있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인 "도야미리(道也味里)"가 도림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신도림동은 60년전만 하더라도 6가구만이 거주했던 한촌이었다.그런데 1934년 무렵 경인도로가 개통되면서 전일의 도림동 지역이었던문래동(文來洞) 철거 지역 주민 30여 가구의 이전으로 주민 수가늘어났으나 이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광복 이전만 하여도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50여 세대만이 거주하였다. 일제 때 경인로도로변의 동아건설 산업주식회사 장비사업소(지금의 신도림동 432번지)자리에 류정(柳町) 염색공장이 세워지면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자 신도림동 이름 대신에 류정(柳町) 마을로 더 잘 알려졌다. 류정마을하면인근에서는 인심이 좋은 마을로 알려지는 한편 이곳의 참외는 특히유명했다.

위치 및 연혁

구로구의 동북쪽에 위치한 신도림동은영등포와 양천구의 접경이자 경인로, 서부간선도로 및 지하철 신도림역, 도림천역이 위치하여 교통 인구가 많고, 안양천과 도림천이 합류하는저지대는 준공업지구로 많은 공장이 밀집되어 있다. 1960년대부터공장지대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이제는 등록된 공장업체 333개(1993년)에달하는 공업지구가 되었다. 유명한 것으로 도림교 건너 경인로 우측에넓게 자리잡고 있는 신도림동 365번지의 한국타이어, 그 옆의삼영화학공업(三營化學工業), 한국타이어 남쪽에 있는대성연탄(大成煙炭), 신도림동의 남동쪽 경인로변의종근당제약회사(鐘根堂製藥會社)등이 유명하다. 그 동안은 공장이산재한 까닭에 환경공해와 관련된 민원이 많았던 지역이나, 근래에는공장지대가 다른 곳으로 이주해가는 추세이고 건축경기의 활성화에힘입어 종근당의 부지에 아파트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등 점차 쾌적한주거지로 발전되고 있다.

구로구의 동북쪽에 위치한 신도림동은 영등포와 양천구의 접경이자경인로, 서부간선도로 및 지하철 신도림역, 도림천역이 위치하여 교통인구가 많고, 안양천과 도림천이 합류하는 저지대는 준공업지구로 많은공장이 밀집되어 있다. 1960년대부터 공장지대가 형성되기 시작하여이제는 등록된 공장업체 333개(1993년)에 달하는 공업지구가 되었다. 유명한 것으로 도림교 건너 경인로 우측에 넓게 자리잡고 있는 신도림동365번지의 한국타이어, 그 옆의 삼영화학공업(三營化學工業), 한국타이어 남쪽에 있는 대성연탄(大成煙炭), 신도림동의 남동쪽경인로변의 종근당제약회사(鐘根堂製藥會社)등이 유명하다. 그 동안은공장이 산재한 까닭에 환경공해와 관련된 민원이 많았던 지역이나,근래에는 공장지대가 다른 곳으로 이주해가는 추세이고 건축경기의활성화에 힘입어 종근당의 부지에 아파트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등 점차쾌적한 주거지로 발전되고 있다.

옛지명

원지목리

원지목리는 옛날 도림천 근처에서 소와 말을길렀기 때문에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이에 따라 도림천을마장천(馬場川)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마장천 근처에 풀이 많아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말을 기르던 양마장(養馬場)이 있었던 데서 그명칭이 유래한다. 조선초기부터 말은 그 수요가 많았던 까닭에 서울동쪽 살곶이벌(箭串坪)에 말을 기르는 목장을 설치하였지만,그것만으로는 수요를 충당할 수가 없어서 전국적으로 많은 마장(馬場)을설치함에 따라 이곳에도 마장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말의 용도가 거의 없어졌지만, 100여년 전만하더라도 말은 가장 유용한 교통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역마(驛馬)나파발(擺撥)을 위시하여 농경에도 이용되었다. 또 전시(戰時)에도전마(戰馬)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말갈기와 말총은 갓이나관모(冠帽)를 만드는 중요한 재료로 쓰였으며, 말 가죽은 고급 가죽으로신발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었고, 심지어 마분(馬奮)은비료 · 종이 · 연료 · 약의 원료로도 사용되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마분지(馬奮紙)는 원래는 마분(馬奮)을 원료로 만든 종이었던 것이다.이처럼 말의 각 부위는 다방면으로 사용되었던 까닭에 항상 수요가많았는데,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는 중국에서 말의 진상을 요구해와이만저만한 고통이 아니었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부터 조선 세종9년(1427)까지 53년 동안 1만여 필의 말이 중국에 보내졌고, 조선초에는 한 번에 1만여 필의 말을 바친 적도 있었다.


또 근래에는 말고기를 잘 먹지 않지만 조선 초에는 말고기를고급식품으로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세종 때에는 말의 값이폭등하여 "말고기 파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에 한성부에서는 말의도살과 말고기의 판매를 허가제로 통제하고 이를 어기는 자는처벌하기도 하였으며, 세종 3년(1421)에는 외국의 사신 접대에도말고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조처에도 불구하고 양반들 사이에는 밀도살한 말고기를 몰래 먹기도하였다. 이와 함께 말의 값이 오르자 관아(官衙)나 개인이 기르는 말의갈기와 말총을 몰래 잘라가는 범죄도 빈번히 발생하여 사회문제가되기도 하는 실정이었다. 성종(成宗) 때에는 말가죽으로 만든 가죽신의착용을 제한하기도하였다.

상원지목

원지목리의 한 마을로 위쪽에 있던마을이다.

송원지목리

원지목리의 한 마을로 아래쪽에 있던마을인데 송씨(宋氏)가 처음 입주하였던 까닭에송원지목리(宋遠芝牧里)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아랫말

상원지목(上遠芝牧)의 아래쪽에 있던마을인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웃마을

상원지목(上遠芝牧)의 위쪽에 있던 마을인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벌동네

지금의 조흥화학(朝興化學)이 위치한 부근의 벌판에 있던 마을로, 벌판에 있던 동네라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모랫말다리

도림천에 있는 도림교(道林橋)의 옛이름이다. 도림천은 지금은 대부분 복개 되어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자치행정과 이영미
  • 전화번호 02-860-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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