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과행정동
연혁 및 동명의 유래
구로구의 중심동인 구로동은 현재 구로1동∼5동의 5개의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명과 관련 옛날이곳에는 9명의 장수한 노인이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조선 영조(英祖) 시대까지는 경기도 금천현(衿川縣) 상북면(上北面)구로(九老)1 · 2리였으나, 1795년(正祖 19년) 衿川縣(금천현)이시흥현(始興顯)으로 개칭됨에 따라 시흥군(始興郡) 상북면(上北面)구로리(九老里)가 되었다. 1895년(高宗 33년) 5월 26일 전문 6조의 칙령98호를 발표하여 지방제도의 대개혁이 단행되었는데, 이 때 시흥현은시흥군으로 바뀌고 안산 · 과천군과 함께 인천부(仁川府)에 속하게되었다. 이후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朝鮮總督府令) 제111호에의해 경기도 각 면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함에 따라, 이 지역은경기도 시흥군 북면(北面) 구로리가 되었다. 이어 1936년 4월 1일에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의거해 경기도 시흥군의 영등포읍과 북면 · 동면지역의 일부가 경성부에 편입될 때 구로리 지역은 이에서 제외되어경기도 시흥군 동면(東面) 구로리가 되었다.
1949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159호에 따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이대폭 확장되어 경기도 시흥군 동면의 구로리 · 도림리 · 번대방리 및경기도 고양군 수인면 · 둑도면 · 은평면의 42개 동리가 서울시에편입되었는데, 이 중 시흥군 동면 구로리 · 도림리 · 번대방리 등 3개동리는 영등포구에서 직접 관할하였다. 그러나 동리명은 옛날 그대로"리(里)"로 칭해오다가 1950년 3월 15일서울특별시조례 제10호「서울특별시 동리 명칭 중 개정의 건」이 공포되어 모두 "동(洞)"으로고쳐졌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 「동장정원 및 명칭과관할구역 변경조례」로 행정동이조정되어 구로동은 구로제1동, 구로제2동, 구로제3동의 3개동으로 분동(分洞)되었다. 1975년 10월 1일서울특별시조례 제 979호에 의해 동명칭 및 구역확정이 있었고, 동981조에 의해 동장정원 및 명칭과 관할구역의 변경이 있었는데, 이 때구로4동이 신설되었다. 그리고 1977년 9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제1181호로 인구 3만명 이상의 동을 분동함에 따라 구로 1동을 구로1동과 5동으로 구로4동을 구로4동과 6동으로 각각 분동하였다. 그리고 3년 후인 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에 의해 구로동공업단지를 중심으로 발전 계획이 수립되어 영등포구로부터 구로구가분리 신설됨에 따라 구로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8년 7월 1일 서울특별시 구로구 조례 제158호로 구로본동이 신설되어 7개의행정동으로 나뉘어 오늘에 이른다.
위치 및 연혁
구로동은 구로구의 중심이 되는 동으로 그 위치는 동쪽은 독산동과 영등포구 문래동(文來洞) · 관악구 신림동(新林洞)과 이웃하여 있으며, 서쪽은 고척동과, 남쪽은가리봉동과 광명시(光明市)와 북쪽은 신도림동(新道林洞) 및 영등포구문래동과 이웃하여 있다.
구로동은 6개의 행정동으로 나뉘어 있는데, 전체의 면적은 5.2㎢로 구로구 전체의 약 4분의 1에 달하며, 인구또한 14만여명으로 구로구 전체의 38%에 달한다. 그리고 본동에는구로구 행정의 중심인 구로구청과 구로경찰서가 자리잡고 있으며, 흔히 구로공단으로 불리는 한국수출공업단지 중 제1단지가 구로3동에 자리잡고 있어 구로구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구로본동에는 구로기계공구상가 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제5동에는 애경백화점이 들어서 구로구의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 교통면에서도 경인로와 남부순환로가 지나고 있고, 가마산길, 구로동길,공단로, 신대방로 등의 가로망이 잘 발달하였을 뿐 아니라, 철도로는경부선과 경인선이 지나고 있으며 지하철 1호선의신도림역 · 구로역 · 구일역과 2호선의 신도림역 · 대림역 · 구로공단역이위치하여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구로동은 구로구를 대표하는 중심동일뿐 아니라, 상업과공업의 중심지로 일찍부터 발달하여 구로구의 다른 지역에 비해도시화가 진전된 까닭에, 원래의 토박이는 별로 없고 대부분이이주민이다. 따라서 구로동의 자연부락 명칭이나 옛 지명은 원주민의이전과 공단을 중심으로 한 급격한 신도시의 형성으로 지금은 별로 남아있지 않으며, 지금은 공단 위주의 공업지역을 벗어나점차 쾌적한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추세이다.
옛지명
구루지 마을
하구로리(下九老里)의 옛 명칭으로 구로동가운데 가장 오래된 마을이다. 원래 구로리는 상 · 중 · 하의 3개의마을로 형성되었으며 그 중 가장 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구루지 마을이다. 지금의 구로5동사무소 동남쪽 일대가 구루지 마을이고그 중심지는 애경백화점 뒤편 부근이라고 한다.
늑대다리
구루지 마을의 뒷편은 산으로 가려져 있고, 이 산에서 흘러내린 크고 작은 시내들이 있는 까닭에 자연히 많은다리가 생겨났다. 그 중에서도 구루지마을 뒷편에 해당되는 지금의기아산업 중기사업소 정문 앞에는 꽤 넓은 냇가가 형성되어있었기때문에 다른 곳과는 달리 토교(土橋)가 놓여 있었다. 근처의 야산이낮기는 하나 당시에는 워낙 숲이 무성하였고, 도 마을의 뒷편이라후미진 까닭에 한낮에도 사람들이 혼자서는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고한다. 이런 연유로 이 부근에는 산짐승 가운데서도 특히 늑대가 많았고,또 도둑들도 이곳에서 숨어 지나가는 행인의 금품을 가로채기 일쑤였기때문에 이 다리를 늑대다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복개 되어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각만이마을
각만이 마을은 현재 구로 5동 사무소 서쪽애경백화점 오른쪽에 있던 마을로 풍수가들이 앞으로 이 지역에 수만호가 들어앉을 것이라고 예언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예언대로이곳에는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인구밀도도 높을 뿐 아니라 통행인도많은 곳이 되었으니, 풍수가들의 예언이 들어맞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마을의 뒷동산을 각만이 동산이라고 불렀는데 옛날에는 숲이 많았다고한다.
새말
지금 구로5동의 동쪽 산기슭에 새로 생긴마을로 처음에는 윤씨 농막과 서너 채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주막거리
늑대다리 부근의 경인가도 변에 주막과대장간을 포함한 서너채의 집이 있어 주막거리라고 불리었다. 현재의경인로 앞 기아산업 중기사업소 일대에 해당된다. 이 주막거리에서 멀지않은 곳에 경부(京釜) · 경인선(京仁線)의 분기점이 되는 구로역이있으니, 옛날의 주막이 오늘날의 역사(驛舍)가 된 우연치 않은 예라하겠다.
옻우물 약수터
구로5동 523번지 29호에 있던 상나무재에서늑대다리로 가자면 오른쪽은 산이고 왼쪽은 논인데, 그 가운데로 길이나 있다. 그 길로 늑대다리를 거의 다가서 산밑에 샘물이 있는데, 겨울에도 얼지 않고 흘렀다. 이 물이 약수물로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퍼지자 인근 마을 사람은 물론 먼 곳에서도 약물을 퍼다 먹었으며, 매월초하루와 보름이면 이 약수물에 고사를 지내는 사람이 많았다. 이약수물은 특히 옻오른 사람이 마시면 백발백중으로 나았기 때문에옻우물약수터라고 하였던 것이다.
명물 및 명소
상나무재
구로5동 523-29에 있던 큰 상나무(향나무로추정)로 말미암아 상나무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상나무는 구로구의유래가 된 아홉 노인(老人) 중 한 분이 식재 하였다 하며, 500여 년이지난 나무로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의 역할과 기원, 기우제 등 망신들을위한 제사를 지냈으며, 마을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을 때는 반드시 절을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나무는 속 내부가 썩고 도시개발 등으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지자 20여년전에 제거되어 현재는 그위치에 가옥이 들어서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현재 주민 중30여년 전에 이 상나무 아래에서 가족사진을 찍은 것이 2장 남아 있어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구로공단
구로동 하면 먼저 공장지대를 연상하게되는데, 이른바 구로공단으로 불리는 한국수출 공업단지 중 대부분이금천구로 이관되었으나, 이 중 제1단지는 아직도 구로동에 자리잡고있다. 이 지역이 공단으로 육성된 이유는 이 지역이 경부선과 경인선이지나고 있으며 수도권 전철과 경인고속도로에서 모두 1km 이내에자리잡고 있어, 원부자재의 반입 및 수출화물의 선적 등은 물론이고, 종업원의 출퇴근에 이르기까지 입지조건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1963년입지가 결정된 뒤 1965년에 착공하여 1967년에 준공된 제1단지의총면적은 모두 45만여㎡로 지금의 구로3동에 자리잡고 있다. 이공단에는식료품 · 섬유 · 목재 · 인쇄 · 석유화학 · 비금속 · 1차금속 · 조립금속 등의업종이 입주하고 있으며, 종업원 수는 1987년 경에는 15,000 명에육박하였으나 현재는 점차 줄어들어 11,000명 정도이며 지금도 공장들이외지로 이전하고 있는 추세이다.
구로기계부품유통단지
구로동 635-8번지 일대의 공장 이적지 3만여평에 건축면적 5만여평의 대규모 구로기계부품유통단지가 들어서서영등포의 기계공구상가와 함께 주요 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서울시내청계천 등지의 부품상가들을 주로 입주시킬 계획으로 조성된 본 단지는도심인구의 교통집중을 억제하고 도심부의 적정시설을 외곽으로이전하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구로구의 새로운 상권으로 육성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