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소개

부서자료실

조회수 377 작성일 2007년 09월 21일 16시 24분 39초
대표-구로소개-구청(동)안내-부서안내-도로과-부서자료실 상세보기 - 제목 , 부서 , 내용 , 파일 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우리나라의 조명 변천사
부서 도로과

인류 초기 조명은 보온과 조명 및 취사를 함께하던 모닥불에서 조명을 주목적으로 하는 이동형(移動形) 횃불로 변화하였다. 점차 인지가 발전해나가면서 풀이나 나무를 재료로 하던 모닥불과 횃불에서 참기름, 콩기름, 면실류, 들기름, 피마유 등의 식물성 기름과 어유, 돈지유, 우지유 등의 동물성 기름을 사용하는 등잔불로 발전해나갔다.

1887년 경복궁에 백열전구가 켜지기 전까지 우리의 전통적인 조명은 등잔불이었다. 지역과 환경에 따라 횃불, 관솔, 초의 사용이혼용되기도 했지만 등잔불은 횃불과 관솔불보다 편리하고 촛불보다 저비용이어서 오랫동안 다수가 애용할 수 있는 조명이었다.

종지형 그릇에 자가 생산한 동식물성 기름을 부어 역시 자가생산한 심지를 담아 불을 놓는 등잔불은 편리하면서도 경제적이어서 시대를 초월한 부담 없는 조명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초는 원료가 희소하고 제작방법이 어려워 조선 중기까지 왕실과 소수 귀족층만이 사용하던 조명구였다. 초 구하기가 어려운 만큼 촛대 역시 일반 백성들이 자주 접할 수 있는 조명구는 아니었다. 일상 조명구로 쓰이던 등잔불과 달리 초와 촛대는 제사와 혼례와 같은 특별한 때에 쓰이던 귀한 조명구였다.

동물성기름을 이용한 종지형 등잔


1876년 인화성이 강한 석유가 들어오면서부터 종지형 등잔 외에 심지꽂이가 따로 붙은 호형(壺形) 등잔이 사용되었다.

같은 등잔불이라도 전통적인 종지형 등잔이 담는 동식물성 기름은 인화성이 크지 않지만 석유를 담는 호형등잔은 불꽃이 크게 일어나기 때문에 조명구로 안전하게 사용하기위해서는 뚜껑과 심지구멍으로 불꽃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였다.


심지꽂이가 따로 붙은 호형등잔


1879년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지 불과 8년 후인 1887년 3월 우리나라 경복궁의 건청궁(乾淸宮)에 백열전구가 켜졌고 이후 한성전기회사가 1900년 4월에 종로에 가로등 3등을 점등하면서 민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1887년 3월 경복궁의 건청궁(乾淸宮)에 백열전구가 켜짐(전기박물관 소장)


백열전구는 1738년에 발명된 석유등이나 1799년에 점화된 가스등보다 위생적이고 화재 위험이 없는 진보된 조명구였으며 1808년부터 쓰인 아크등보다 유지비가 훨씬 덜하였고 편리하였다.

미국 GE사가 1938년 수은등 내면에 형광물질을 바른 형광전구를 실용화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1955년부터 수입되어 1957년에 국산품으로 대량생산되었다. 1964년 전기의 제한송전이 해제되면서 한국전력에서는 1965년 농어촌전화촉진법 (農漁村電化促進法)사업을 추진하였고 이후 도시와 농촌 전 지역이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조명생활로 변화하게 되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도로과
  • 전화번호 02-860-2405
  • 콘텐츠수정일 2019.11.04.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1,000자 이내로 입력하여 주십시오.(현재 0자 / 최대 1,000자)
만족도 조사 관련 내용 외에 문의사항이나 민원내용은 종합민원의 민원신청을 이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