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 쉬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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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 전문가가 추천하는 여행코스!
구로의 관광명소를 테마별로 알차게 즐길 수 있는 마을 여행 코스를 소개합니다.

구로 쉬어가는 길

코스소개
유한양행의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가 가족을 위해 지은 별장 구두인관부터 푸른수목원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자연속에서 쉼을 얻고 힐링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코스안내
구두인관 → 더불어숲 → 푸른수목원 → 항동철길 → 옛 주막거리

① 구두인관

성공회대 정문으로 들어서면 구두인관이 반갑게 맞아준다. 유한양행의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가 1936년 가족을 위해 지은 별장으로 건립 이후 유일한 박사의 사저로 이용되었지만, 1956년 대한성공회가 매입하면서 신학 교육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구두인[The Reverend Charles Goodwin][1961~1007] 신부를 기리는 '구두인관'으로 이름 붙였다. 1970년대 민주화를 위한 젊은이들의 연구 집회 장소로 사용되며 민청련사건의 산실이기도 했던 구두인관은 현재 법인 사무국, 신학연구소 등으로 사용 중이다. 그런데 구두인관의 겉과 속이 다르다? 세련된 붉은 벽돌로 서양식 건축양식을 따른 구두인관의 내부는 한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외부인 비공개로 운영 중인 구두인관의 문이 언젠가는 활짝 열려 역사의 현장을 직접 느끼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 오류동 이미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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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더불어숲

성공회대 캠퍼스를 지나 건지산 낮은 언덕을 오르면 익숙한 '처음처럼' 글귀를 판각한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조금 더 오르면 故신영복 선생의 추모공원이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신영복 선생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88년 광복절 특사로 특별가석방을 받아 출소했다. 1989년부터는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하였다. 2016년 신영복 선생 사후, 함께 사는 것을 강조했던 선생의 뜻을 담아 구로구와 성공회대, 더불어숲 재단이 함께 추모공원을 만들었고, 산책로를 따라 신용복 선생의 서화 3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천천히 자연 속에서 서화를 눈과 마음으로 담다 보면 어느덧 갈림길에 다다르고, 그 길에는 오른쪽으로는 푸른수목원이, 왼쪽으로는 항동철길이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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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푸른 수목원

도시의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고 친환경 생태 공간을 조성한다는 취지를 담아 2013년 개장한 서울 최초의 시립 수목원이다. 1,700여 종의 다양한 식물과 25개의 테마정원을 갖춘 수목원은 계단이 없어 장애인이나 유모차를 동반한 가족들도 편안하게 다닐 수 있다. 또한, 수목원 내에 자리한 항동저수지에 다다르면 바람과 장단 맞추는 식물들의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는 듯하다. 수목원을 한 바퀴 돌면서 스탬프 6개를 찍어 북카페에 보여주고 왕관 도장, 씨앗 세트를 받는 소소한 재미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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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입니다.

       

      

        

       

     

     
           
 

④ 항동철길

구로구 항동 지역을 통과하는 오류선의 일부가 항동철길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푸른 숲과 탁 트인 하늘, 쭉 뻗은 철길이 반겨주는 항동철길과 농촌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출사에 관심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으나 2010년대 중반 들어 주변지역인 항동이 재개발되면서, 도심 속 옛 철길의 이색적인 모습을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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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옛 주막거리

제물포와 한양을 오가기 위해서는 경인로를 따라 약 100리를 이동해야 했다. 경인로의 중간지점인 오류골은 사람과 화물의 집산지로 자연스레 주변에는 주막거리가 형성되어 여행객들의 허기를 채워 주었다. 특히, 개항 이후에는 제물포와 한양을 왕래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많았다고 한다. 아침에 제물포에서 출발하면 점심쯤 오류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오류동 주막거리에 당도해야만 한양으로 가는 일정에 차질이 없었기에, 가마꾼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여행객들은 제시간에 주막거리에 도착하기 위해 가마꾼에게 웃돈을 얹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주막거리 객사로 추정되는 기와집이 남아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주막거리 객사였음을 알려주는 명소비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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