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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의 숨은 이야기와 매력을 만나보는
문화유산명 | 소재지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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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계묘역 | 고척동 산6-3 |
여계묘역에는 함양 여씨의 선조인 숭의랑공 여계의 묘가 위쪽에 있고 그 아래쪽에는 부인의 묘가 있다.
함양 여씨의 시조는 중국 내주사람 여어매인데 그는 원래 당나라의 한림학사를 역임하였으며, 황소의 난을 피하여 통일신라 헌강왕 3년(877)신라에 귀화하였다.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 정착하여 살았고, 고려시대에는 공조 전서를 지냈다. 여계는 고려말에서 조선초기 병조판서를 지낸 여칭(1351~1423)의 아들이며, 태종 때에 호조좌랑‧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세종3년(1421)에 세상을 떠났으며, 세종10년(1428)에 이곳에 묘소를 마련하였다. 부인은 청송심시로 당시 정승을 지낸 심백덕의 손녀이며, 판사를 지낸 심의구의 딸이다. 묘역에는 무덤2기, 묘비1개, 상석2기, 문인석 4기가 있다. 조선전기 묘제를 알 수 있는 분묘양식으로, 지석과 기단석 등은 조선초기 묘지 양식 연구에도 도움을 주는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
류순정류홍부자묘역 | 오류동 산43-31, 산43-2 |
류순정 · 류홍 부자 묘역은 서울 지역에서 유일한 부자(父子) 2대 공신 묘역으로 조성시기도 16c 전반으로 상당히 이른 시기에 속한다. 특히 중종반정의 1등공신인 류순정의 묘역은 조성 당시 왕족에게만 내려주던 장흥고(長興庫)의 관곽(棺槨)을 사여할 정도로 국가적 관심속에서 조성되어 공신묘역의 조성방식을 알게 하는 중요자료이다. 묘역 내 석물들 또한 매우 정교하고 생동감 있는 조각수법과 강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어 이 시대 조각사 연구에 의미 있는 자료가 되며, 문인석 등에 보이는 의복 등은 복식사 연구에 중요자료가 된다. 또한 두 공신들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해 놓은 신도비의 비문은 실록 등 문헌기록을 보완하는 사료가 될 뿐만 아니라 당대에 해서체로 두각을 나타낸 명필 송인(宋寅)의 필체를 느낄 수 있는 서예사적 중요자료이기도 하다. 류순정(안동권씨 묘역 포함)과 류홍의 묘역 및 묘역에 부속된 석물 중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대상을 2004. 8. 20자 시 기념물 제 22호로 지정했으며 진주류씨 문성공파 종친회가 관리자로 지정되어있다. |
묘법연화경 | 개봉동 295-12(원응사) |
후진의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역한 『묘법연화경』을 송나라 계환이 요해(要解)한 주해본을 저본으로, 조선 초기 명필가인 성달생(成達生), 성개(成槪) 형제가 정서(淨書)한 판본을 1572년(선조5)에 경상도 상주 대승사에서 개판한 목판본. 전 7권을 3책(권1-2, 권3-4, 권5-7)으로 장황(裝潢)한 완질본 상태로 동일한 판본은 현재까지 원각사와 대둔사 등에 영본(零本)이 소장된 사실이 알려져 있으나, 전7권의 완질본이 소장된 사례는 원응사 소장본이 유일함. 또한 인경 당시에 제작한 포갑(包匣)이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고, 권수에 수록된 변상도를 판각한 각수가 ‘의연(儀連)’으로 기재되어 있음. 대승사판 법화경은 현재 2건이 국내 사찰에 전존(傳存)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모두 전체 권수가 불완전한 영본인 것에 반해, 조사 대상본은 전 7권의 완질본이므로 문화유산적 가치가 높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