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소개

통신

봉수(熢燧)

통신이라 함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에 정보를 전달하고 의사를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전근대의 통신수단에는 구전(口傳), 신호(信號), 봉화(烽火), 파발(擺撥), 우역(郵驛)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인간의 청각과 시각에 의존하고, 근대로 내려올수록 문자와 기계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


봉수제도는 전근대의 통신수단 중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것이다. 이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꽃을 이용하여 정보를 원거리까지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서 산악이 많은 우리나라는 각 지역의 고봉(高峰)을 이용하여 남해안으로부터 함경도 종성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거미줄처럼 커버하는 봉수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높은 산의 정상 부근에 설치했던 봉수대 자리는 오늘날의 마이크로웨이브 자리와 대체로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봉수대의 설치로 보아 무척 과학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봉황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도 등재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의종(毅宗) 3년(1149)의 기록에 의하면 평상시는 1번, 2급(急)에는 2번, 3급(急)에는 3번, 4급(急)에는 4번씩 연기(낮)나 불꽃(밤)을 올리도록 했다. 연기나 봉화를 올릴 때는 싸리나무와 관솔을 태우고, 연기를 올릴 때는 섭나무위에다 말똥이나 이리똥을 태웠다. 비바람이 불더라도 불빛과 연기가 일직선으로 높게 올라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봉수대에는 방정(防丁)2명, 백정 30명을 배치하여 임무에 종사하도록 하고, 이들에게는 평전(平田) 10결(結)이 지급되었다.


전국의 모든 봉수는 서울의 남산(木覓山)에 집결하도록 짜여 있었다. 봉수의 기간선상에 있는 것을 직봉(直烽), 보조선상에 있는 것을 간봉(間烽)이라 불렀다. 전국의 봉수는 아래와 같이 5개 거로(炬路)로 펼쳐져 있었다.

  • 제1거로(동북노선) : 함북 경흥(慶興) - 서울(직봉 122,간봉 58, 계 180)
  • 제2거로(동남노선) : 경남 동래(東萊) - 서울(직봉 44,간봉 110, 계 154)
  • 제3거로(서북내륙노선) : 평북 강계(江界) - 서울(직봉79개, 간봉 21, 계 99)
  • 제4거로(서북해안노선) : 평북 의주 - 서울(직봉 71, 간봉21, 계 92)
  • 제5거로(서남노선) : 전남 순천(順天) - 서울(직봉 61,간봉 24, 계 85)

봉수제도는 조선시대에도 기본적으로 유지되다가 근대적인 통신수단이 도입되면서 폐지되었다. 고종(高宗) 31년(1894)의 일이다. 구조지역에 남아 있는 봉수대로서는 온수동 근처 온수산(溫水山, 일명 봉화산이라고도 부름)과 양천(陽川) 개화산(開花山)의 봉수대를 들 수있다. 이들은 제5거로에 속하는 것으로서 돌산도(突山島)-강진(康津)-영광(靈光)-부안(扶安)-옥구(沃構)-공주(公州)-수원(水原)-인천(仁川)-양천(陽川)을 경유하여 남산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우역

봉수보다는 느리지만 긴급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전근대의 통신수단으로서 파발(擺撥)과 우역(郵驛)이 있었다. 파발은 말을 사용하는 기발(騎撥)과 빠른 걸음을 사용하는 보발(步撥)이 있었다. 우역도 말을 이용하는 것과 걷는 것 두 가지가 있었다. 우역제도는 신라때부터 발전하였는데 중앙의 명령을 받아 지방에 하달하고 지도 공물(貢物)을 중앙으로 이송하는 임무까지도 맡았다. 이러한 우역제도는 조선시대에 잘 정비되어 있었다.


영조(英祖) 때 편찬된 [속대전(續大典)]에 의하면, 전국의 역로(驛路)는 대 중 소로 구분되어 9개의 노선이 있었다. 그 중에서 구로지역을 통과하는 역로로는 서울-인천-강화를 연결하는 노선과 서울-통영(統營) 또는 서울-충청수영(忠淸水營)을 연결하는 노선이 있었다. 양천(陽川)과 금천(衿川)에 주요 역이 있었고, 오류에는 간이역이 있었다.


우편(郵便)

구로지역에 처음으로 우편업무가 개시된것은 1900년대 초였다. 1900년 봄에 대한제국이 통신원(通信院)이라는 체신사업 관청을 설치하고, 1903년 8월 15일에는 시흥지사(始興支司, 영등포에 위치함)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우편사업은 발전의 기틀을 다지기 전에 일본에 빼앗기는 운명에 처했다. 물자와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우편이야말로 침략의 신경조직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05년 4월 1일 대한제국과 한일통신기관협정을 체결하여 모든 체신기관을 빼앗고, 1906년부터는 이를 한국통감부 통신관리국에 소속시켜 버렸다. 이 과정에서 시흥지사는 1905년 5월 20일 경성우편국 영등포출장소에 인계되었다.


해방후 우편사업은 자주권을 되찾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 업무도 서신과 물건의 배달뿐만 아니라 전신과 금융까지도 취급하게 되었다. 오늘날 구로구내에는 수많은 우체국이 설치되어 있다. 구로단지우체국, 구로1동우체국, 구로4동우체국, 중동우체국, 오류우체국 등이 그것이다.

전신, 전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기통신이 도입된것은 1880년대 초였다. 다른 근대적 문물이 그러했듯이 전기통신도 열강의 이권쟁탈의 일환으로서 도입되었다. 일본은 1883년에 나가사키(長崎)-쓰시마(對馬島)-부산(釜山)을 연결하는 해저전선을가설하고 부산에 공무성(工務省) 소관의 전신분국(電信分局)을 설치했다. 그리고 영국은 1885년 5월 거문도와 상하이(上海)사이에 해저전선을 가설했다.


구로지역에 전신망이 처음으로 깔린 것은 1885년 8월 청(淸)에 의해서였다. 청은 인천-서울-의주-사이에 전신선을 가설하고 서울에 조선전보총국(朝鮮電報總局)을, 인천 평양 의주에는 분국을 각각 설치했다. 조선정부는 이에 맞서 서울-부산에 독자적인 전신선을 가설하였다. 이 무렵 경인간의 전신선이 통과한 지점은 부평(富平), 양천(陽川), 시흥(始興), 양화진(楊花津)이었다.


대한제국은 1903년 8월 한성전보소(漢城電報所) 아래 4곳의전보지소(展報支所)를 설치했다. 여기에는 시흥지소(始興支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침략의 일환으로서 발전단계에 있던 전신전화 시설을 차례로 빼앗아 갔다. 1905년 한일통신기관 협정을 체결하여 한국의 통신시설을 모두 장악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흥전보지소도 1905년 5월 20일 일본에 접수되어 경성우편국 영등포출장소로 이관되었다.


서울지역의 전신전화는 일제시대에 큰 폭으로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이를 관장하는 기구들도 정비되었다. 1923년 7월 1일에 경성중앙전화국(경성우편국에서 분리됨)이 신설되고, 광화문 용산등지에 분국이 설치되었다.


해방후 서울의 전신전화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였다. 1946년 5월1일 경성전신 전화건설국이 신설되고, 1950년 1월 12일에는 경성중앙전화국을 서울중앙전화국으로 각 곳에 분국을 설치했다. 구로지역에는 1960년 2월 24일에 영등포 분국이 시설되었고, 1961년 10월 2일에 영등포전화국으로 승격하였다(1963년 6월 20일 영등포전신전화국으로명칭 변경). 1970년 3월 21일에는 영등포전신전화국 양서분국오류분실이 신설되었다. 그리고 1972년 7월 1일에는 서울시 외전화국구로분국이 설치되었다(1976년 2월 20일 시흥분국으로 명칭 변경). 1977년 8월 16일에는 구로전신전화국과 개봉전신전화국이 신설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전신전화의 관리체계가 혁신되고 각종 장비와 기술을 자급자족하게 됨으로써 세계 유수의 전신전화 강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982년 1월 1일을 기하여 한국전기통신공사 서울지사가 발족하고, 관내에 13개의 전화국과 17개의 전신전화국이 설치되었다. 구로지역을 관할하는 전신전화국으로서는 구로전신전화국과 개봉전신전화국이 있다(1990년 1월 5일부로 전화국으로 명칭 변경). 이들은 구로지역의 전신전화 업무에 많은 편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참고로 구로전화국과 개봉전화국의 업무 현황을 제시하면 다음 표와같다.


[표 6-4] 구로전화국의 업무현황(1990년도)

1990년도 구로전화국의 업무현황 안내 - 구분, 인원, 재정, 가입자수, 교환시설, 전화판매, 관할 인구수, 전화 보급율 (100명당), 년도별, 정원, 현원, 수입, 지출, 가입 전화, 공중 전화, 기 계 식, 전 자 식, 가입 전화, 공중 전화 순으로 내용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구분 인원 재정 가입자수 교환시설 전화판매 관할 인구수 전화 보급율 (100명당)
년도별 정원 현원 수입 지출 가입 전화 공중 전화 기 계 식 전 자 식 가입 전화 공중 전화
76                        
77             12          
78             22          
79             30          
80             35          
81             35 20        
82         60,814   40 20     615,987 9.9
83         88,805   40 50     634,494 14.0
84     22,084,026   105,338   40 70 13,974   665,220 15.8
85 337 320 25,624,312   119,845   43 100 11,341   690,592 17.4
86 356 344 29,908,667 4,681,942 138,588 2,481 43 120 17,419   704,802 19.7
87 370 361 37,217,903 5,711,640 155,425 2,681 43 140 18,353 200 710,242 21.9
88 387 386 45,081,251 7,192,312 184,902 2,977 43 160 34,837 296 717,130 25.8
89 399 398 49,969,473 9,149,584 214,828 3,009 48 180 28,856 320 756,230 28.4
90 451 451 63,603,314 10,684,728 252,549 3,469 48 220 30,588 460 779,767 32.4
비고 (단위) 천원 천원 KL KL

[표6-5] 개봉전화국의 업무 현황(1990년도)

1990년도 개봉전화국의 업무 현황 안내 - 연도, 계, 음식료 품 및 담배 제조업, 섬유의 복 및 가죽산 업, 나무 및 나무제 품 제조업, 종이 및 종이제 품·인쇄 및 출판, 화학섬유· 석탄고무· 프라스틱 제품제, 비금속광 물제조업 (석유·석 탄제품제 외), 1차 금속, 조립금 속제품 기계및 장비 제조업, 기타 제조업 순으로 내용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연도 음식료 품 및 담배 제조업 섬유의 복 및 가죽산 업 나무 및 나무제 품 제조업 종이 및 종이제 품·인쇄 및 출판 화학섬유· 석탄고무· 프라스틱 제품제 비금속광 물제조업 (석유·석 탄제품제 외) 1차 금속 조립금 속제품 기계및 장비 제조업 기타 제조업
1983 1,562 40 187 27 81 246 96 57 771 57
1984 1,580 53 199 28 78 234 85 78 732 93
1985 1,442 49 190 33 78 224 74 46 687 61
1986 1,414 49 190 33 78 196 74 46 687 61
1987 1,336 45 179 31 74 184 70 44 650 59
1988 1,315 42 170 35 78 164 72 46 648 60
1989 1,293 32 203 15 63 175 32 66 598 109
1990 2,179 30 283 20 107 298 38 128 1,134 141
1991 2,640 37 282 26 130 330 36 24 1,670 105
1992 2,392 35 262 146 83 281 23 128 1,428 6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스마트도시과
  • 전화번호 02-860-2928
  • 콘텐츠수정일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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